배우 하영 측, “증조부 친일 의혹은 사실무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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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출연 후 불거진 증조부 친일 논란
배우 하영(본명 안하영·33) 측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제기된 증조부의 친일 행적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영의 소속사는 10일 증조부가 안상호 선생인 것은 맞지만, 온라인상에서 제기된 친일 의혹 관련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이번 논란은 하영이 지난 7일 방송된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집안 내력을 공개하면서 시작됐다.

4대째 의사 집안, 방송에서 화제
하영은 방송에서 증조할아버지가 일본에서 양의학을 배워와 한국에서 개원한 첫 의사였다고 들었다며, 할아버지와 아버지, 언니도 모두 의사인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사실을 공개했다.
방송에서는 하영의 증조부를 소개하며 고종 황제를 치료했다는 내용의 자막이 함께 노출되기도 했다.
방송 직후 온라인서 동일 인물 지목, 의혹 확산
방송 직후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하영의 증조부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의사 안상호(1872~1927)와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의 행적을 둘러싼 친일 의혹이 제기됐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안상호는 1902년 6월 일본 동경자혜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해 한국인 최초로 일본 의사자격증을 취득한 인물이다.

1904년 귀국한 그는 순종의 전의로 활동하며 지석영이 세운 의학교와 동제의학교에서 서양의학을 강의했다.
서울 종로3가에 개인 진료소를 마련해 의료 활동을 이어갔으며, 일본인 의사들의 단체인 경성의사회에 대항해 한국인 의사들로 구성된 한성의사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고종 진료 이력, 독살 무고 의혹도
안상호는 고종을 직접 진료하기도 했다.
1919년 1월 고종이 덕수궁 함녕전에서 뇌출혈로 쓰러졌을 당시, 전의였던 그는 일본인 의사와 함께 고종을 진료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그는 일본인의 사주로 고종에게 독약을 올렸다는 무고를 받기도 했으나, 한국학중앙연구원은 관련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 해당 의혹의 진위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영 아버지 = 안병문 인터뷰 내용
친일인명사전엔 이름 없어
한편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 편찬한 친일인명사전 명단에는 안상호의 이름이 등재돼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두고 온라인상에서는 방송에서 소개된 내용과 실제 역사적 기록 사이의 간극을 둘러싸고 다양한 해석이 이어지고 있다.
대정친목회 회원 목록




핵심 인물 ① 이완용
대정실업친목회의 고문을 맡았던 이완용은 대한제국기 외부대신서리와 의정부 참정대신, 내각총리대신 등을 지낸 관료로, 을사오적이자 경술구적으로 꼽히는 대표적인 친일반민족행위자다.
핵심 인물 ② 송병준
일진회 총재와 중추원 고문, 백작 작위를 받은 송병준 역시 대표적인 친일 인사로 꼽힌다.
조선 말기 사헌부 감찰과 중추부 도사 등을 지냈으며, 대한제국기에는 농상공부대신과 내부대신 등을 역임하고 정미칠적으로 지탄받았다.
일본으로부터 백작 작위와 중추원 고문 지위를 받았으며, 그가 사망하자 일본 천황이 애도하고 조선총독이 조문했을 만큼 일제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았던 인물이다.
핵심 인물 ③ 조중응
대한제국기 통감부촉탁과 농상공부대신 등을 역임한 조중응 역시 정미조약과 한일병합조약 체결에 참여해 정미칠적과 경술국적으로 지탄받은 인물이다.
일본에서 조선어 교사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김홍집 내각이 붕괴하자 일본으로 망명했던 이력도 있다.
핵심 인물 ④ 이윤용
대한제국기 궁내부특진관과 내대신사무, 궁내부대신 등을 역임한 이윤용도 대정실업친목회 고문을 맡았던 인물이다.
1909년에는 의병을 진압하기 위해 보부상과 교섭해 경비를 지출하기로 결정하는 등 활동을 벌였으며, 1910년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았다.
이후 대정친목회 평의원회 회장을 맡는 등 내선융화를 강령으로 하는 친일단체 활동에 깊이 관여했다.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이들
이완용, 송병준, 조중응 등은 모두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등재된 인물들로, 대정실업친목회는 이처럼 당대 대표적인 친일 인사들이 대거 포진했던 조직이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무단정치기 유일한 단체로 설립
일제강점기였던 1916년 11월, 서울에서 ‘대정친목회’라고도 불린 친일 단체 ‘대정실업친목회’가 조직됐다.
이 단체는 1910년 일제가 강제로 국권을 병탄한 뒤 모든 결사를 금지시켰던 무단정치기에 유일하게 허용된 단체였다는 점에서 특이한 위치를 차지한다.
설립 당초 취지는 회원 간 의사소통을 통해 정의를 두텁게 하고 정신 수양을 꾀하는 데 있었다고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국가 경축일 관련 사업, 경성 번영 관련 사업, 경제 및 근검저축 사업, 법령 주지와 납세의무·위생근행 관련 사업 등을 연구 과제로 삼았다.
결과적으로 조선 민중이 무단정치에 잘 순응하도록 유도하는 각종 방안을 모색하는 성격의 단체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1921년 개편 이후 노골적인 친일 색채
1921년 1월 대회에서 조직을 개편하면서 일본인들은 고문 자리에서 물러나고, 조선인 귀족과 대지주, 예속자본가들이 중심이 된 친일 단체로 그 성격이 뚜렷해졌다.
당시 회장은 민영기, 부회장은 조진태가 맡았으며, 고문에는 이완용, 민영휘, 이윤용 등이 이름을 올렸고 회원 수는 250명까지 늘어났다.
간부진의 면면만 봐도 알 수 있듯, 3·1운동에 반대한 대지주와 예속자본가, 조선귀족들로 구성된 명실상부한 친일 단체였다는 평가다.
한일 상호 친목, 산업 발달과 증식, 교육 보급과 문화 향상 등을 강령으로 내세웠지만, 이는 민중의 반일 독립의식을 말살하려는 일제의 정치 선전을 조선인의 언어로 포장한 것에 가까웠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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