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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재의 인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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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재의 인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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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부터 홍콩 영화의 팬이었던 안성재 셰프에게 다음 사업의 장소로 홍콩을 선택하는 것은 어려운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영어를 전혀 못한다는 이유로 미국으로 이주한 뒤 학교 친구들에게 폭행을 당했던 어린 아시아계 소년 안성재는 포기하지 않는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서 힘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안성재의 인생 이야기

12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간 그는 영어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혼란스러운 청소년기를 보내야 했습니다. 부모님도 차 한 대와 빈 주머니로 시작한 이민 생활을 해나가며 안성재 역시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일손을 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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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된 그는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자 군대에 자원했습니다. 군인으로 미국 동부, 유럽, 한국 등을 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했고, 이라크 전쟁자원 파병되어 바그다드에서 1년 넘게 지내기도 했습니다. 전역 후,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며 포르쉐 정비공이 되기로 결심하고 학교에 입학까지 했으나, 우연히 거리에서 요리 학교 학생들을 보고 요리에 대한 관심이 생겨 결국 요리 학교로 진로를 바꿨습니다.

요리 학교 첫날부터 생활비를 벌기 위해 주방 보조 일을 시작했고, 고급 일식당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후에는 미국에서 최초로 미슐랭 스타를 받은 일식당 ‘우라사와‘에서도 일하게 되었습니다. 안성재는 이곳에서 첫 달은 무급으로 주방 바닥을 닦으며 시작했지만, 결국 2년 동안 모든 주방 업무를 혼자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우라사와 셰프가 엄격하기로 유명했지만, 군인 출신으로 규율을 알고 있다는 점을 어필해 설득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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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미국 최고의 레스토랑프렌치 런드리의 한 셰프가 우라사와를 방문하면서 안성재를 스카웃하게 되었고, 프렌치 런드리로 들어가 미슐랭 3스타 셰프 토마스 켈러 밑에서 경력을 쌓았습니다. 프렌치 런드리에서 일하면서 나파밸리의 와인밭 한가운데에 있는 오두막에 살며 꿈을 이어갔습니다. 이후 24세에 주방 보조로 시작해 30세에 총괄 셰프, 그리고 33세에 샌프란시스코에서 레스토랑 ‘모수’를 오픈하며 미슐랭 1스타를 획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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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아메리칸 드림은 실패로 여겨졌지만, 안성재는 미슐랭 별을 처음 받았을 때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부모님이 겪어야 했던 모든 고생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후 그는 한국으로 모수를 옮겼고, 2018년에 미슐랭 1스타, 2019년에 2스타, 그리고 2022년에는 미슐랭 3스타를 받으며 한국 요리계를 대표하는 셰프로 자리 잡았습니다.

참고로 모수라는 이름은 그가 이민을 떠나기 전 한국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집 근처 코스모스 밭에서 영감을 받아 지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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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재의 인생 이야기”의 1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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