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북한이라 불린 섬, 오이타현 히메시마무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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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조금 독특한 일본의 한 섬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해요. 바로 일본 오이타현에 위치한 히메시마무라(姫島村)인데요. 이곳은 오랫동안 특정 가문이 섬 전체를 장악하며 권력을 독점해왔던 탓에, 일본 내부에서조차 ‘일본의 북한’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곤 합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북한과 달리 이들은 권력 유지를 위해 경제 개발에 적극 나섰다는 사실이에요.


두 가문의 대립에서 시작된 권력 독점
원래 히메시마무라는 후지모토 가문과 시카노 가문이 양분하고 있었어요.
1955년 촌장 선거가 직선제로 바뀌면서 두 가문은 선거에 뛰어들었고, 공통 공약은 충격적이게도 “당선되면 상대 가문을 몰살시키겠다”였습니다.
치열한 싸움 끝에 후지모토 겐키치가 당선, 이후 시카노 가문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1957년 잠시 시카노 가문이 권력을 잡기도 했으나, 곧 후지모토 측에 의해 쫓겨났고, 그때부터 사실상 섬은 후지모토 가문 일당 독점 체제로 변해갔습니다.


경제 개발: 보리새우로 부자 된 섬
후지모토 쿠마오는 촌장이 된 뒤 “이제 이 섬에 선거는 없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섬의 모든 예산을 보리새우 양식장 건설에 쏟아붓습니다.
그 결과 히메시마무라는 일본 보리새우 생산량의 10%를 책임지는 주요 산지가 되었고, 후지모토는 보리새우 회사와 해운사를 차려 섬 주민들을 모두 고용합니다. 항구까지 장악해 다른 배의 출입을 막아 이동권까지 통제했으니, 주민들은 자연스레 후지모토 가문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죠.

중앙정치와의 유착
이러한 권력 독점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중앙 정치와의 연결도 있었습니다.
히메시마무라 출신 정치인 니시무라 에이이치(前 자민당 부총재)가 후지모토 가문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기 때문이에요. 덕분에 후지모토 가문은 섬 안팎에서 더욱 탄탄한 기반을 갖추게 됩니다.

세습과 우상화
후지모토 쿠마오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 후지모토 아키오가 촌장직을 세습합니다. 아키오는 아버지 동상을 세우고, 초·중학교 교과 과정에 아버지 일생을 넣어 우상화 작업을 진행했죠.
게다가 하수도·요양원·광케이블·무료 급식 등 다양한 정책을 펼치며 주민들을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습니다.

반기를 든 후지모토 일원
아이러니하게도 가문 내부에서 반기를 든 인물이 있었는데, 바로 후지모토 토시카즈입니다.
NHK 아나운서 출신으로 한국에서 교수로 활동했던 그는 섬의 현실을 바꾸겠다며 촌장 선거에 출마했지만, 두 번의 도전 모두 패배로 끝나고 말았어요.


68년 만의 정권 교체, 그러나…
2024년, 드디어 후지모토 아키오가 고령으로 물러나고, 다이아키 야스하루라는 새로운 촌장이 선출됩니다. 무려 68년 만의 정권 교체였지만, 실상은 후지모토 가문이 세운 바지사장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즉, 이름만 바뀌었을 뿐 후지모토 가문의 영향력은 여전한 셈이죠.
히메시마무라는 일본의 민주주의 속에서도 가문 독재 + 경제 개발 + 중앙정계 유착이 결합된 독특한 사례입니다.
북한과 비교될 만큼 권위적인 통치를 펼쳤지만, 동시에 경제 기반을 일구고 주민 생계를 책임지는 이중적인 모습 때문에 더욱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 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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