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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하우스 오브 호러’ 형제복지원, 진실은 호주에 묻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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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하우스 오브 호러’ 형제복지원, 진실은 호주에 묻혔나

#형제복지원 #인권유린 #호주망명 #진실화해위원회

한국판 ‘하우스 오브 호러’ 형제복지원, 진실은 호주에 묻혔나

1976년부터 1987년까지 부산에 존재했던 복지원, 형제복지원. 당시 정부는 거리를 ‘정화’한다는 명목으로 이곳을 운영하게 했지만, 그 안은 상상조차 힘든 인권유린의 현장이었습니다. 수천 명이 강제로 끌려와 불법 감금, 강제노동, 폭행, 성폭력에 시달렸고 공식 기록만 551명 사망—실제 숫자는 훨씬 많을 것이라 추정됩니다.


■ “범죄자가 아닌데 왜 번호표를 받아야 했나”

박순희 씨(가명)는 열 살이던 1980년, 이유도 모른 채 형제복지원에 끌려갔습니다. 6년 동안 강제노역과 폭행, 성적 학대를 당했습니다. 그녀는 알자지라 다큐멘터리 101 East에서 “나는 죄를 지은 적이 없는데 왜 수감번호를 받아야 했는가. 이 낙인은 평생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 강제노역과 집단 폭행

형제복지원은 “직업 훈련소”를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거대한 공장이었습니다. 연필, 우산, 의류, 목공·금속 제품을 생산해 막대한 수익을 올렸지만, 수감자들은 임금을 거의 받지 못했습니다.

하루 목표량을 채우지 못하면 야구방망이로 구타당했고, 집단 벌이 일상이었습니다. 어떤 수감자는 공개 처형에 가까운 폭행 끝에 사망했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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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로 포장된 폭력

시설 중심에는 거대한 교회가 있었습니다. 하루 5시 30분 새벽예배, 주 2~3회 강제예배 참석은 기본이었고, 탈출 시도자는 교회 앞에서 ‘인민재판’을 당했습니다. 설교와 기도로 폭력을 정당화한 운영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잔혹한 현실을 가려버렸습니다.


■ 권력과 돈으로 덮인 진실

형제복지원 원장이던 박인근은 군 출신이자 권력층과 깊은 연줄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1987년 검찰 수사로 횡령·불법감금 혐의가 드러났지만, 불법감금은 무죄 처리되고 횡령으로 고작 2년 반 형만 선고받았습니다. 당시 전두환 정권, 부산시장 등 고위 인사들이 뒤를 봐줬다는 증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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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주로 이어진 ‘검은 그림자’

박인근과 그의 처남 임영순 목사 등 가족들은 한국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1980년대 후반 호주에 정착했습니다. 시드니 교회를 세우고, 1995년에는 가족회사 잡스타운(Job’s Town)을 통해 140만 호주달러짜리 골프 연습장과 스포츠 단지를 매입했습니다.

피해자들은 이 재산이 “피와 땀, 목숨으로 만들어진 돈”이라고 주장합니다. 현재 이 부동산은 연간 30만 호주달러 이상의 임대 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가족들이 여전히 소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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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나지 않은 싸움

2020년 한국 정부는 특별법을 제정해 진실·화해위원회가 재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생존자들은 “호주에 있는 임영순 목사 등 가족을 한국으로 송환해 조사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들이 호주에 세운 자산을 몰수해 피해자들에게 돌려달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나”

수많은 생존자들이 여전히 트라우마와 빈곤 속에 살고 있습니다. 동생을 함께 수감 생활 중 잃은 최승우 씨는 부산 추모공원에서 오열했습니다.
“정부와 형제복지원 운영자 모두 벌을 받아야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단 말입니까?”


형제복지원 사건은 한국 현대사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진실은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았고, 책임자 처벌과 피해자 치유는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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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해외 다큐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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