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가장 빠르게 재벌이 된 사람
대한민국에서 가장 빠르게 재벌이 된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이야기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1936년 대구에서 태어난 김우중은 14살이 되던 해, 6.25 전쟁으로 인해 가정이 몰락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가장 노릇을 위해 10대부터 신문배달과 같은 일을 하며 청춘을 보냈고, 연세대학교를 장학금으로 졸업했다.
장학금을 제공한 한성실업에서 졸업 전 “회사에서 잠시 일해달라”는 제안을 받은 김우중은 이를 수락하였다. 유학을 준비하던 중 한성실업에서의 짧은 기간 동안 그는 효율적인 업무 방법을 개발하고 잘 팔리지 않던 원단과 재고를 모두 판매하는 놀라운 성과를 보였다. 이에 한성실업 사장은 그에게 유학비를 지원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유학을 떠나기 전 동남아를 경유하면서 현지 공장을 둘러보고, 샘플을 확보해 다른 나라에 영업을 펼치며 대규모 계약을 따냈다. 이로 인해 한성실업은 국내 최초의 섬유제품 직수출 기업이 되었고, 김우중은 입사 6년 만에 임원이 되었다.
하지만 여권 발급 문제로 유학을 떠나지 못한 그는 전 거래처 사람의 제안으로 영업에 참여했고, 이후 30세에 자신의 회사를 창업했다. 창업 후 곧바로 동남아 출장에서 30만 달러짜리 계약을 따내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창업 5년 만에는 5천만 달러 수출을 기록하며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70년대 중후반부터는 중공업, 자동차 등 제조업에도 진출하며 세계화에 집념을 보였고, 78년에는 대한민국 전체 수출 1위를 달성했다. 90년대에는 국가 전체 수출의 10%를 차지했고, 김우중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러나 98년 IMF 위기가 터지며 대우그룹은 실체가 밝혀지며 몰락했다. 당시 대우의 대내외 부채는 약 90조원에 달했으며, 분식회계로 실적과 재무재표가 부풀려졌음이 드러났다. 김우중은 추징금을 피해 해외로 잠적했으나, 2019년 사망했다. 이와 같은 그의 인생은 대한민국 경제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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